풀이 마르는 소리
최동호
벽지 뒤에서 밤 두시의
풀이 마르는 소리가 들린다.
건조한 가을 공기에
벽과 종이 사이의
좁은 공간을 밀착시키던
풀기 없는 소리가 들린다.
허허로와 밀착되지 않는 벽과 벽지의
공간이 부푸는 밤 도시의
보이지 않는 생활처럼
어둠이 벽지 뒤에서 소리를 내면
드높다, 이 가을 벌레소리.
후미진 여름이
빗물진 벽지를 말리고
마당에서
풀잎 하나 하나를 밟으면
싸늘한 물방울들이
겨울을 향하여 땅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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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열정과 내면적 사색의 충돌,
현실과 자아의 간극으로 인해 갈등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 소리의 공간화
1연 계절의 변화를 풀이 마르는 소리
2연 벽지 뒤에서 소리
3연 가을벌레소리
적막과 고요한 느낌이 많이 난다.
또한 시인의 내면 풍경까지도 포함하고 있음
소리(청각)가 많이 있다.
시각적 심상이 주를 이룸
2) '물'의 이미지
소리는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
소리가 집결하여,
물은 숨어 있는 내면적 이미지
소리가 물방울에 스며들어 떨어졌기 때문이다.
풀기, 빗물, 물방울
생명을 소생시키는 근원으로, 영혼의 갈증을 해소케하는 청량제,
오염된 현실과 욕망을 정화하는 정화수로 작용
3연) 여름의 빗물 진 벽지 > 풀기가 마르는 과정 / 시간의 경과를 내포
고립감이 커진다는 뜻
4연) 마르는 과정 > 물방울이 떨어짐 / 생명의 생성과 마름과 물방울 자연의 순환
3) 순간의 시학
'소리의 공간화'라는 기법을 더 엄밀히 해명할 수 있음
>> 무한한 시공을 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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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바람
최동호
백지 위에
만년필의 갈증이 일어
밤새 넘쳐오는
목마름의 길목을 조이더니
사해 바다 건너
황하 강변 모래바람
날 흐리게 불어
보오얀 산 그리매를
우이동 큰 바위산 너머로
떠메어 가고
깊은 갈증의 밤을
만년필에 맑은 물처럼 담으면
사그럭거리는 모래 소리에
이 한낮
황사바람이 창문을 때리니,
해말간 살결을
잔잔한 햇빛 속에 잠그면
거대한 강물이 소리없이 흐른다
첫 시집의 표제시인 ' 소리'의 이미지와 '물'의 이미지를 중심로 형성된다.
'만년필에 맑은 물처럼 담으면'
'거대한 강물이 소리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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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와 명상의 시인 - 최동호
- 관조와 명상은 외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 침잠을 통해 평정을 되찾는 심적 작용
* 자기 응시적 시선을 통해 세속도시의 번잡한 일상과
욕망을 꿰뚫고 견고하고 투명한 시적 공간 획득
* 그의 시가 현실을 초월하여 인간 세계의 호흡과 체온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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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의 시가 평정과 고요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사라져가는 시대 상황 속에서 세속
도시의 현실을 견디고, 극복하기 위한 것!
자연과 합일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고
높은 정신적 자세를 추구하는 동시에 끊임없는 '책'을 통해 현실을 읽은
주로 자연을 시적대상으로 삼는다.
시적자아가 대상, 통화, 투사를 통해
시를 구성함
고독, 외로움의 세계는 고고한 정신의 높이를 반영할 뿐 아니라,
현실로부터의 멀어짐에서 오는 마음의 상태
최동호 시는 투명하고 견고한 시적 공간 속에는,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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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고뇌와 방황은 하나의 궁극적 진리를 찾으려는 탐색의 소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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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된 형상화 방법
1. 감정을 절제하고 섬세한 자연 묘사
2. 자신의 내면을 객관화
3. 자연과의 합일
이 3가지를 통해서
깨달음의 경지를 추구하는 선시풍의 경향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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