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3번째 시집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한산(선시)에서 바쇼(하이쿠)까지 섭력하고 꾸준하고 지속적인 탐색의 시도를 통해
유교, 불교 도교에 대표되는 동양사상을 체득하는 데 공을 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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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산시
최동호
때때로
하늘 편지 구름에게 받아 보고
언제나 적적한
마당을 쓴다.
드문드문 빗방울에
지워지다
흐리게 남아 있는
산새들의 야윈 발자국
올올한
바위 틈에 찾아올 길 없는
집 한 채 지어놓고
때때로
이끼 낀 물소리 베개하고
바람소리 적적한
귀를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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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적이고 응축된 시의 형식을 보여준다.
※ 한산자
천태산 서쪽에 있는 한암에 은거하며 기인 생활을 한 인물
나무, 바위, 절 기둥에 시를 지었다.
그가 죽은 후 그것을 모아 시집으로 엮었는데, 선시의 시초가 되었다고 함
* 시풍
노자사상을 바탕으로 불교적 선풍을 담고 있는데,
불교적 은둔자의 모습과 당대의 현실과 타락한 종교를 비판하는
현실 비판자의 모습을 동시에 지님
이전의 시와 다른 점
주체에 대한 회의로부터 벗어나,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전체로 조화하는 자유자애한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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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산시
최동호
겨울 눈 깊어지면
얼음 속에 잡혀 있는 모래알처럼
눈과 더불어 편안한 산사에 들어가
홀로 한산시를 읽으리라
얼음 기둥 울퉁불퉁 뿌리 뻗은
빙벽 앞에서 충혈된 눈길 씻으며
폭포수 바위를 타고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청청한 물소리를 들으리라
정갈한 겨울 눈 발등에 덮고
찬바람으로 잔 가지를 키우는
정정한 나무들 사이에서
마음껏 소리 질러 가슴을 펴리라.
인적이 끊긴 눈 속에서
밤 늦도록 몰아치는 쓸쓸한 바람의
낯선 목소리를 등불 밑에서 찾으리라
눈 그친 산과 들에 쏟아지는 정갈한 햇빛을
잔잔히 흔들리는 갈대와 함께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리라
아스팔트 길 비추는 휘황한 불빛 사이로
녹아서 물이 되는 함박눈을 밟으며
세멘트 벽 속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오늘은 새우등 춥게 구부리고
내내 잠들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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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움은 호연지기의 기상으로 나타남
마음을 비움으로써 정신의 자유를 회복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로 들어섰음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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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빛-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1
최동호
붉은 살덩어리
어린애가 막 울고 있는데
달마는 왜 동쪽으로 오는가
구름은 산 아래를 굽어보고
빗방울 길을 따라 바다로 흘러간다
오고 갈 것이 본래 없는데
어린애는 왜 목이 붓도록 울고
눈썹 짙은 달마는
왜 먼길을 찾아왔는가
잔잔한 강물이
마음 그림자를 비춰주니
하늘에서 떨어진 둥근 달덩이
물 속으로 들어가 소리가 없다.
저잣거리를 헤매이던 사람들
하늘에서 달덩이 찾으러 하나,
창창한 별들만 어둠 깊이 박히고,
그림자 없는 길을 걸어간다
너는 가는 곳이 어디냐
뜰 앞 잣나무!
제자리를 지켜라
달빛을 쓸어내니
캄캄한 어둠을 머금었던 하늘이
새벽 빛을 푸른 산에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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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는 선불교를 중국에 전한 인물로,
자기를 비우고 대상에 몰입을 통해 직관적으로 진리를 터득하려는 유심론적 경향
천지자연의 원리를 통해 자아와 대상을 분리하지 않고 부분을 전체로 보고 있다.
따라서 동양적 사유 원리를 통해 통합의 원리를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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