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차 - 박정대의 시 : 내면의식의 흐름



단편(短篇)들

박정대

1. 워터멜론 슈가에서

물이 끊고 있다. 가습기 같은 내 영혼, 아스펜 익스트림이란 영화를 보고, 눈이 쌓인 설원을 생각했어야 되는데 진로 소주 한 병의 위력에도 휘정거리는 아스펜 아스피린 같은 혼몽한 겨울밤. 비명처럼 담배 한 대를 피워물고 옛날처럼 나는 늙었다. 워터멜론 슈가에서 오늘은 누가 또 미국의 송어낚시를, 피워무는지 몰라도 무섭도록 그리운 건 담배 한 개피 속에 떠오르는 춥디추웠던 그 골방의 기억뿐,

겨울밤엔 담배가 필요해 洋 누군가 와줬으면 해. 워터멜론 슈가에서 나 기다려.

난초 한 뿌리에 잎사귀는 열아홉 개. 거미는 다리가 여덟 개. 하늘에는 쌍둥이 구름이 흐러가고 디셈버는 십이월 , 옥토버는 시월, 사월은 에이프릴. 앞치마 같은 여자들.

난초를 마신다, 가습기 같은 내 영혼, 고장난 지붕 위로 비가 내려 난초를 한 컵 마시고 그는 위해서 운다. 난초잎 속의 여자들, 여자들 속의 난초잎. 쌍둥이 구름에 관한 기억들이 거리를 걸어간다.
푸르게 돋아나는 거리에서 그는 취해간다. 포켓볼 같은, 핀볼 같은 생, 베나레스에는 아직 벵갈 호랑이가 살아 있고 호랑이는 다리가 3개.


2 페루여관에서

그 거리를 지나 그들이 당도한 골목 끝에 섬처럼 여관이 하나 떠 있었다. 여관은 검객의 차양모 같은 지붕을 뒤집어쓰고 낡은 간판을 펄럭이고 있었는데 여관의 이름이 취생몽사였는지 동사서독이었는지 난초 잎사귀 속의 호랑이였는지 호텔 바그다드였는지 페루여관이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암튼 그들은 지친 육체를 이끌고 그곳에 당도한 가엾은 한 쌍의 새였다. 동사가 티브이를 틀었고 서독은 침대 위에 무너져 오래도록 누워 있었다. 아주 오래도록 누워 있었는데 동사와 서독 사이로 바람이 불고 바람은 화병에 그려진 벵갈호랑이를 피워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티브이 화면에서도 심하게 바람이 불고 지익 직 소리를 내며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폭설 속에서 밤은 또 워테멜론처럼 푸르게 푸르게 익어 가고 있었을 것인데, 동사의 담배연기만이 벽에 걸린 액자 속 여인의 두툼한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벽에 걸린 여인은 동사의 담배연기가 간지러웠던지 맥주잔을 든채 몸을 비비꼬고 이었는데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태평양의 산호섬이 보이고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서독은 액자 속 야자수 너머의 어떤 한 점을 응시한 채 계속 말없이 누워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담배를 물려주며 동사는 그가 지나온 거리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다리가 있었다. 담배를 피워문 채 동사는 다리를 지나 서독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담배를 피워문 채, 담배가 다 타는 동안만 그들은 사라을 나누었다. 가벼워졌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동사가 물었다. 네 몸이 나를 거볍게 해. 그렇게 대답하며 서독은 동사의 몸 한가운데를 물고 다시 어디론가로 날아올랐다.


3.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에서

깊은 밤에 빅토르 최라는 천막을 하나 치고 알전구에 몸을 데우다 보면 태양이라는 게 뭐 별건가요. 그는 캄차트카의 화부였다는데 화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되죠. 태양이라는 게 뭐 별건가요. 화부, 화부라는 직업 참, 좋죠. 자고로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볼 만한 일이요. 왜 거 있잖아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 화부를 위한 작품이죠. 불 때는 남자, 그럴듯하지 않아요? 아궁이에 불 넣는 남자. 태양이라는 게 뭐 별건가요. 바닷속 물고기의 눈동자에도 태양은 있어요. 하지만 깊은 밤에 잠들지 못하고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태양을 등진 사람이에요. 스스로 태양을 피워 올리려는 사람이죠. 거리에서 태양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런 말은 믿을 게 못되죠. 태양을 보려고 사막에 간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곳에도 태양은 없었어요. 착각에 지나지 않아요. 그들이 태양이라고 믿는 것은 사실 태양이 아니에요. 태양은 그렇게 쉽사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 하지만 뭐 따지고 보면 태양이 뭐 별건가요. 태양다방도 있고 태양당구장도 있고 태양뷔페도 있는데 알고 보면 그런 게 다 태양이지요. 눈만 감으면 시시때때로 더로르는 게 태양이에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도 다 태양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태양다방의 아가씨도 태양이에요. 그녀의 명함 속에 분명히 씌여 있어요,


이 시에서도 시인은 과거를 회상하고 합니다.
시집의 표제 시로 핵심적인 모티프들이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복합적인 이미지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관에서의 산호섬, 태양 단편이라고는 하지만,
화자는 아직도 기억과 현실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따뜻함과 차가움의 대립을 통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술과 담배 때문에 몽롱한 정신에서 상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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