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석서(碩鼠)



1. 기본해석


碩鼠碩鼠(석서석서)
- 큰 쥐야 큰쥐야

無食我黍(무식아서)
- 우리 기장 먹지 마라

三歲貫女(삼세관여)
- 삼년이나 너를 먹였는데

莫我肯顧(막아긍고)
- 나를 돌보지 않네

逝將去女(서장거여)
- 장차 너를 떠나,

適彼樂土(적피낙토)
- 낙토로 갈것이야

樂土樂土(낙토낙토)
- 낙토여 낙토

爰得我所(원득아소)
-내가 가야할 곳



碩鼠碩鼠(석서석서)
- 큰 쥐야 큰쥐야

無食我麥(무식아맥)
- 우리보리 먹지마라

三歲貫女(삼세관여)
- 삼년 너를 돌봤지만

莫我肯德(막아긍덕)
- 덕 베풀줄 모르는 구나

逝將去女(서장거여)
- 반드시 너를 떠나

適彼樂國(적피낙국)
- 저 낙국으로 갈테야

樂國樂國(낙국낙국)
- 낙국이여 낙국이여

爰得我直(원득아직)
- 내가 있을 곳



碩鼠碩鼠(석서석서)
- 큰 쥐야 큰 쥐야

無食我苗(무식아묘)
- 우리 싹을 먹지마라

三歲貫女(삼세관여)
- 삼년 너를 모셨는데

莫我肯勞(막아긍로)
- 나를 위하지 않는 구나

逝將去女(서장거여)
- 맹세코 너를 떠나

適彼樂郊(적피낙교)
- 다른 나라로 갈거야

樂郊樂郊(낙교낙교)
- 낙교여 낙교

誰之永號(수지영호)
- 누구의 영원한 탄식인가!



2. 작품분석

碩鼠碩鼠(석서석서)
- 큰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無食我黍(무식아서)
- 無(무)는 동사 부정형으로

三歲貫女(삼세관여)
- 여기의 3년은 <오랜 세월>이라는 의미가 더 강함
- 女(여)도 여자라는 의미보다 <너>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莫我肯顧(막아긍고)
- 莫(막)은 부정의 부사어로 쓰이고 있다.

逝將去女(서장거여)
- 逝(서)는 <맹세하겠다>로 해석이 좋다.
- <내가 맹세컨데 너를 떠날거야>라는 의미가 있다.

適彼樂土(적피낙토)
- 樂土(낙토)의 의미는 즐겁고, 행복하고, 희망찬 땅이다.
- 아마 농부가 착취에 시달려서 어디로 가야겠다는 뜻이다.

樂土樂土(낙토낙토)
- 2번의 반복을 통해 희망하는 곳을 더욱 강조함

爰得我所(원득아소)
- 내가 있을 곳을 낙토라고 강조를 한다.



碩鼠碩鼠(석서석서)
- 큰 쥐야 큰쥐야

無食我麥(무식아맥)
- 麥(맥)은 보리를 뜻한다.
- 1수에서는 기장, 2수에서는 보리를 사용하였다.
- 이를 통해 기장과 보리가 주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쓰여질 당시 '위나라' 지역은 남부쪽이긴 하지만 쌀농사가 주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三歲貫女(삼세관여)
- 삼년 너를 돌봤지만

莫我肯德(막아긍덕)
- 1수는 나를 돌보이 않는다고 하였고
- 2수는 나에게 덕을 베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逝將去女(서장거여)
- 반드시 너를 떠나

適彼樂國(적피낙국)
- 저 낙국으로 갈테야

樂國樂國(낙국낙국)
- 낙국이여 낙국이여

爰得我直(원득아직)
- 直(직)이라는 한자는 <가치가 있다, 그럴 만하다>의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 정말 이 곳은 내가 있을만한 곳이야



碩鼠碩鼠(석서석서)
- 큰 쥐야 큰 쥐야

無食我苗(무식아묘)
- 苗(묘)는 <싹>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우리 싹을 먹지마라

三歲貫女(삼세관여)
- 삼년 너를 모셨는데

莫我肯勞(막아긍로)
- 勞(로)는 여기서 <수고를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이고 있다.
- 나를 위하지 않는 구나

逝將去女(서장거여)
- 逝(서)는 <맹세를 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 통가자의 원리 : 시경 시에서는 발음이 같은 글자를 통용해서 쓰기도 한다.
- 맹세코 너를 떠나

適彼樂郊(적피낙교)
- 郊(교)는 <외곽, 교외>라는 뜻을 가진다. 즐거운 곳으로 떠난다는 뜻이다.
- 다른 나라로 갈거야

樂郊樂郊(낙교낙교)
- 낙교여 낙교

誰之永號(수지영호)
- 누구의 영원한 탄식인가!



3. 못다한 이야기

가. 저항시로 보인다. 시대적 배경은???

- 강렬한 형태를 하고 있지 않고 있다.
- 하지만 주나라 때 노예제도 사회가 붕괴되고 있는 시기라고 추측하고 있다.
- 정나라의 '관후'지역에는 도적들이 몰려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나. 시와는 다르게 농토를 버리고 떠나지 못했을 것 같은데...

- 농민들은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감시를 당하기 때문에 쉽게 도망을 못 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  대부분 야반도주를 했다고 한다.
- 또한 정든 고향을 버리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 것, 지금 사회랑 다른 것이 별로 없다.
- 정치를 잘하는 왕이나 제후는 백성들이 몰리고
- 학정, 폭정을 하는 왕이나 제후는 백성이 떠난다.
- 맹자도 왕도정치, 인의정치를 배풀어서 백성들을 받들어야한다고 강조하였으며,
백성들의 혁명을 정당화 시키려고 했다.


다.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떤 시기라고 볼 수 있는가?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변화가 되던 시기
북방민족의 침략, 자체 통치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해
서주에서 동주로 변화하고, 춘추전국시대로 질서 형태 이어지는 시기

라. 한대악부에 대한 설명한다면?

- 음악을 관장하는 기관중에 하나
- 한나라 때에 각 지역의 민가를 검토를 하고 모으는 기관이었다.
- 각 지역의 분위기, 민풍, 민심을 반영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백성들의 솔직한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한 것

한나라에 악부시가 나오면서 중국의 문인들의 전통시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언시, 칠언시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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